* '허브나라' 주인장의 가족 이야기
'허브나라' 원장님의 남편 이호순씨와 '허브나라'에서 제2의 인생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지금 아들은 미국 뉴욕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고 있고, 딸은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화실에서 작업을 하는 틈틈이 '허브나라'를 오간다. 사실 '허브나라'의 홈피 그림은 전체가 딸의 작품이다. 더불어 '허브나라'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도 모두 딸의 솜씨로 만들어진 '작품 세계'다.
가족이 각자의 일을 즐기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사는 내력을 갖추기까지 '행복'은 어떻게 가꾸어 온 것일까?
이 물음에 그는 "지금까지 가족 간에 누구든지 'NO'란 없었다."고 했다. 가족 간에 서로의 뜻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왔다는 뜻이리라.
그가 남편인 이원장을 만난 건 서울대 농대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서울 공대생이면서도 농대공부에 더 관심이 많았던 이원장은 부모님의 반대로 전과는 하지 못하고, 한달에 10여일 씩 수원으로 농대 수업을 들으러 다니던 중에 지금의 아내와 만나 결혼했다. 삼성에 입사한 이원장은 주말과 휴일을 모를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나라 전체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불도저처럼 일하던 시절이었다고는 하지만, 휴일도 없이 일만 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은 없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이사장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물론 지금에선 그때가 미안하셨던지 고맙다고 하시죠. 하지만 부인들이나 엄마들이 집안에서 불만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그럴게 아니라 그럴 시간에 열심히 배우고 자기 시간 가지는 것으로 발전을 이루어 나가면 좋겠어요. 난 그 시절에 다시 공부해서 만학이지만 서른아홉 살에 대학원에 진학 했거든요."
불만 불평은 해결책이나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없는, 삶에 있어 해약적 요소일 뿐이다. 이 대목에서 또 한가지, 지금껏 남편에게 받은 선물 가운데 특별한 것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선물요? 항상 주시죠. 항상 주니까 특별한 기억이 없어요."
'아하! 이런 부부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이번엔 가족간에 흔히 있을 법한 생일 파티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만 우문(愚問)이 되고야 말았다.
"우리는 생일 파티 같은 거 안 합니다. 우리뿐 아니라 아이들도 다 그래요. 왜? 항상 생일 같이 지내니까요." 라는 현답(賢答) 때문이었다.
자녀들이 모두 공부 잘하고 속 안 썩이면 어느 집이든 화목하지 않겠느냐고 반문을 하겠지만 사실, 슬하의 두 남매는 공부에 있어 '극과 극'이었다. 공부에 취미 없는 아들과 어려서부터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잘하던, 그래서 서울대 미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딸이었다. 하지만 그와 남편은 아이들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
"대학에는 안 들어가도 된다고 항상 그랬어요. 대신 아이들이 뭐 한다는 것 막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성공하는 삶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거 아니겠어요? 본인이 잘하는 거 하는게 성공인 거구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에는 실패했지만 아들은 미국으로 가서 자신을 재발견하는데 성공했다.자기가 무얼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처음엔 영어도 못하고 국내 성적표로 인해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러나 기초 랭귀지 스쿨부터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더니 결국 미국 유수한 대학에 합격을 했다. 이어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학내 컴퓨터 관련 게임공모에 응시해 은상을 수상했다. 그후 아들은 당시의 상금으로 현재의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을 만큼,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 아들의 근황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어요.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스스로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딸 소개를 부탁하자 나이가 서른둘이라고 했다. 기자는 대뜸 "사윗감은 첫 번째로 자연을 사랑해주는 사람이어야겠군요?"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답으로 바로잡아 주었다.
"아니죠. 첫 번째가 딸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써포트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지…"